PSW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저 일이 생기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캐나다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해 먹고, 어떻게 집을 꾸미고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듣는 게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다. 도시의 이곳저곳 지리도 파악하게 되었고, 운전요령이나 영어실력도 조금씩 늘어났다. 항상 ‘난 돈도 벌면서 영어회화공부도 하는 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사람, 낯선 환경들을 맞닥뜨려야 하고, 가끔 이상한 사람들을 겪으면서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쉬프트를 줄이고 싶은 데 그러지 못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내 도움이 필요한 데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게 계속 이일을 해나갈 수 있을 지 고민하던 차에 내가 고정적으로 방문하던 한 가정의 안주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 솔직한 고민을 듣더니 자기 회사에 지원하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Joe라는 이름의 그녀는 장애인을 서포트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밤에 그룹홈에서 자면서 근무하는 Overnight staff 이었고, 동시에 Host family로서 본인의 집에서 장애인 여자분을 서포트하고 있었다. 그 장애인분이 다리골절이라는 부상을 입게 되어 내가 고정적으로 방문하게 된 것이 우리 인연의 시작이었다. Joe는 몇 달 동안 나를 지켜보았고 자기 회사에서도 충분히 잘 해낼 거라면 본인이 Reference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우선 PSW로서 내가 얻고 싶은 경험을 어느 정도 얻었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도전하게 될 포지션은 DSP(Direct Support Professional)이었다. 그룹홈에서 장애인들의 일상을 돕는 일인데, 대체로 한 그룹홈에서 긴 호흡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집저집 잠깐씩 들리지 않고 진짜 가족과 생활하듯 한 집에서 같이 지낸 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다시 인터뷰를 준비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그래도 이제는 이력서에 조금 더 쓸 게 늘어났다. 서류 접수 후, 1차 전화면접, 2차 화상면접을 하였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Reference. PSW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거라 걱정이 되었지만 Supervisor를 잘 만났던 것일까. 그녀는 별 말 없이 Reference 해주었고 나는 새 회사와 일하게 되었다.
3개월 간의 수습기간을 어찌어찌 넘기고 나는 이제 DSP로서 그룹홈에서 일하게 되었다. 얼마나 어리버리 했는 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각 장애인마다 복용해야 하는 다양한 약들과 그에 따른 복용법을 숙지해야 했고, 전화로도 다양한 소통을 해야 했다. 캐나다 가정식을 만드는 것도 낯설었고, 여러 스태프들과 팀워크를 맞추는 것, 내가 서포트하는 장애인들과 라포르를 만드는 것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일하는 곳은 모든 장애인이 백인이었고 그중에서는 나 같은 동아시아인을 만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일은 휠체어가 실리는 거대한 밴을 운전하는 것이었다. 휠체어 때문에 백미러를 볼 수 없이 사이드 미러 만으로 시야를 확보하는 밴을 주차하는 것은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결국 뒷모서리를 벽에 살짝 박는 사고(?)로 있었지만 살짝 기스 정도라 그냥 넘어가지기도 했다. 요즘엔 밴 모는 일을 다른 스태프들이 대부분해서 너무 좋다!
상당한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리버리 실수연발인 나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종종 밀려왔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텼다. 좋은 동료들이 많았다. 특히 이민자의 동병상련을 느끼던 남미나 동유럽 출신, 인도출신 동료들에게 많은 도움과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그 공간과 사람들에게 많이 정이 들었고 일을 하러 가면 친구집에 놀러 온 것 같은 편안함 마저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풀타임 포지션으로 일할 기회가 왔지만 나는 여러 이유로 파트타임 퍼머넌트 포지션으로 남아 있다. 풀타임일 때의 큰 책임감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고, 여전히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기도 했고 이제는 나에게 직업이 하나 더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그룹홈과 사람들이 좋기 때문에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일의 가장 큰 단점이 있는 데 바로 주말이나 저녁시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Statutory holiday에 일을 하면 1.5배의 시급을 받고, 격주로 주말 근무가 의무인 대신에 Stat Hour이 크레딧으로 쌓여서 본인이 원할 때 유급으로 쉴 수 있기는 하다.) 내가 주말에 일을 한다는 것이 다른 가족들에게는 큰 불만이었다. 또 하나 궂은 날씨에도 그룹홈은 운영이 되어야 하기에 일을 쉴 수 없다는 것이 또 다른 단점이었다.
이러한 불만들과 한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나에게 또 다른 직업을 도전해 보도록 이끌게 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 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