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소문난 잔칫집이었는데
데블스 플랜 시즌 2가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궤도라는 빌런이 있었음에도 시즌 1을 나름 재미있게 보았던 서바이벌 성애자인 나로서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공개 날짜를 달력에 적어두며 기다려 왔다. 내 아내 역시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피의 게임 등 같이 안 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로 열렬한 시청자인지라, 서로 두근두근 퇴근 시간 만을 기다리다 드디어 같이 TV 앞에 앉아 첫 화를 감상했다. 하지만 1화를 가 본 뒤, 기분이 묘했다. 마치 소문난 맛집이 새로 오픈했다고 해서 신 나서 갔는데, 막상 그다지 맛은 없는, 그렇지만 차마 서로 그런 말은 꺼내지 못하는 그런 미묘한 기분이랄까. 게다가 2화를 연속해서 볼 만큼 흥이 나지 않아, 다음 날이 되어서야 2화를 보았다. 그리고 장장 4일에 걸쳐 초반 공개분량인 4화까지 전부 보았다. 마치 숙제를 한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장르가 잘못 된 기분
분명 프로그램 소개에는 두뇌 서바이벌이라고 되어있는데, 두뇌도 서바이벌도 없는, 애매한 결과물이 나와버린 느낌이다. 물론 피의 게임 마냥 배신하고, 멱살 잡고, 유리 깨고, 그런 도파민 터지는 상황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모든 것이 평온했다. 이번 데블스 플랜에선 플레이어들이 몰래 연합을 하고, 그 와중에 배신을 하고, 어떤 천재적인 플레이어가 나와 게임의 허점을 찾아 공략하고 등등, 서바이벌을 서바이벌답게 만드는 그 모든 요소들이 빠져 있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세트에 이리저리 배치되어 있는 퍼즐을 푸느라 바빴고, 부제로 떡하니 걸린 데스룸(Death Room)에 떨어진, 좌절하며 갈등해야 할 플레이어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스포라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라, 무슨 인디아나 존스 같은 협동 어드벤처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와중에 1편의 기출문제들을 너무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온 출연자들 덕분에 많은 숨겨진 것들이 순식간에 그리고 뻔하게 밝혀져버렸을 때, 솔직히 김이 많이 빠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스타가 없다
이 작품에는 스타가 없다. 5화 이후에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4화까지 본 입장에서는 말이다. 포스터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소위 한국을 대표하는 천재 캐릭터 이세돌 역시 전혀 아무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방송과 전혀 무관한 일반인들만 모아다가 피의 게임을 찍었다고 한다면, 그만큼의 재미와 분량이 나왔을지 의문이다. 그 이유는, 일반인들은 대체로 상식을 기반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재미와 분량을 중요시 하는 연예인들, 혹은 그에 준하는 개인 방송인들과 달리 일반인들은 서로에게 너무나 예의 바르다. 함부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배신을 적극적으로 꾸미거나 하지 않는다. 특히나 조용하고 예의 바른 동 아시아 인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절대 무리다. 제작진은 솔로지옥의 덱스에 준하는 메기를, 그게 안 되면 미꾸라지라도 여러 마리 풀었어야 했다.
왜 다 눈치게임인가
또 한 가지 문제는 게임의 종류이다. 아무리 두뇌 서바이벌이라고 해도, 다 같이 모여 수학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게임 차제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게임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청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룰의 게임이어야 하며, 플레이어들은 시청자들이 생각지 못한 기발한 전략으로 상대를 농락해야 한다.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은 플레이어라 해도, 배신과 친목질, 스파이 짓을 통해 나름 입지를 만들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하지만 데블스 플랜 시즌 2에는 온통 눈치 게임들 뿐이다. 천재적인 전략도, 기억력도, 연합과 배신도,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저 예상대로 모든 게임이 흘러간다. 그러다 보니 극의 전개가 뻔하고 지루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제작진이 밸런스를 잘못 잡는 바람에, 칩 개수에 따라 초반에 나뉘어져 버린 연합이 너무 공고해져 버렸다는 점이다. 칩에 따라 연합을 나누는 구조로 갈 생각이었다면, 유통되는 칩의 개수 및 개인 플레이어가 칩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훨씬 늘렸어야 한다. 또한 연합 간 갈등을 극대화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데스룸이 제 역할을 했어야 한다. 이름만 살벌한 죽음의 방은, 무슨 감옥 테마로 꾸며진 비즈니스호텔 같았으며, 그곳에 갇힌, 아니 초대된 플레이어들은 한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게다가 아침밥으로 죽이 나오다니...
5화부터는 괜찮을까
물론 아직 완전히 포기 할 타이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다가 플레이어 들 중 누가 각성해서 갑자기 분량을 폭발시킬 수도 있는 거고, 기가 막힌 게임이 후반에 준비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다음 주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누구는 매일 다른 관세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누구는 단일화를 하네 마네 난리를 치며, 내일은 또 무슨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질까 두근거리며 잠드는 이런 다이내믹한 세상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