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딩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현재 캐나다의 한 거대 보험 회사에서 Back-end Software Engineer로 5년 여 째 근무 중이다. 2020년 기준 총 직원 수 37,000명, 2023년 기준 시가 총액 45조원 규모의 매우 큰 회사이며, 연봉 수준 및 복지 역시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캐나다로 오기 전 까지, 나는 단 한줄의 코딩도 해본 적이 없다. 잡지사 편집자로 시작한 나의 커리어는, 게임 기획자 및 영어 강사를 거쳐, 지금의 개발자의 자리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뭔가 굉장히 다이나믹한 커리어 체인지 인 듯 보이지만, 나름 연관성은 있었다. 게임 잡지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게임 업계와 관련이 생겼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게임 기획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해외 인터뷰 등으로 영어 및 일본어를 사용할 일이 많았기에, 영어 강사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게임 기획자를 하면서 프로그래머들과 소통할 일이 자주 있었고,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던 것이기는 하다.
지금 와서 이야기 하자면, 같은 팀 프로그래머의 근거를 알 수 없는 오만함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프로그래밍이라는게 얼마나 그렇게 어렵길래, 그토록 기획자를 무시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알던 어떤 팀장은, "기획자가 대체 하는 일이 뭐야?" 라며, 디자이너들과 프로그래머들만 데리고 야심차게 족구 온라인 게임을 준비했다. 결국 몇 달 만에 대차게 말아 먹고는, 오픈 베타 조차 하지 못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내가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최근 한국에서는 국비 지원 부트캠프니 뭐니 해서 아주 손쉽게 코딩을 배우고, 개발자로서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듯하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발자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 체인지를 이루어 내는지 정확한 통계는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코딩을 그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대충 유튜브 보면서 스케치북에다가 연필로 슥슥 따라 그려대며 연습을 하다 보면, 대충 몇 달만 지나도 그림 실력이 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훌륭한 취미의 탄생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코딩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블로그나 유튜브의 무료 강의들을 따라하며 몇 줄 코드를 작성해보면, 홈페이지도 뚝딱 만들고, 자바 스크립트로 게임도 만들고 할 수 있다. 벌써 내가 프로그래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그걸로 취직을 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캐나다의 시스템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Co-op 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코옵(Co-op) 이란 학교와 회사의 연계를 통해, 학생들에게 직무 관련 실무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운 이론과 직무에서 요구되는 실무 기술 사이의 간극을 줄여주는 것이다. 캐나다에서의 코옵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기간: 코옵 프로그램은 학기 도중 일정 기간 동안 진행된다. 각각의 실무 기간은 다를 수 있으며, 보통 학생들은 4~8개월 동안 회사로 출근해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같은 경우 코옵 기간이 좀 긴 학과여서, 총 4학기(16개월) 동안 회사에서 코옵으로 근무했다.
- 통합: 코옵 프로그램은 공학, 경영학, 컴퓨터 과학, 보건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 과정에 통합되어 있다. 학생들은 학기 별로 학업과 실무 경험을 번갈아가며 겪게 되어 이론적 지식을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 실무 경험: 코옵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전문 분야와 관련된 조직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다. 이는 민간 기업, 정부 기관, 비영리 단체 또는 연구 기관 등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 유급 인턴십: 코옵 프로그램은 보통 유급 인턴십으로 이루어진다. 임금은 산업군, 위치, 학생들의 학력과 경험 수준에 따라 다양하지만 보통 일반 정식 포지션의 시급에 비하면 많이 박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 수입 덕분에, 계속 마이너스만 나던 내 계좌 잔고가 꽤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 취업 기회 증대: 코옵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 기회를 향상시킬 수 있다. 이것이 코옵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인데, 나 같은 경우 지금의 회사에서 코옵으로 8개월 동안 일하고, 남은 학기 동안 같은 팀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다가, 결국 그 팀에서 풀 타임 잡을 잡을 수 있었다.
캐나다 이민의 정석 루트
어떤 이들은 오로지 영주권 하나만을 노리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LMIA를 주겠다는 고용주의 꼬임에 넘어가, 북쪽 시골 마을에 정착해 한 3년 정도 착취를 당한 끝에, 결국 목표로 하던 영주권을 얻었다고 치차.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안정적이며 정석적인 이민의 방법은 바로 대학을 가는 것이다. University 말고 College 말이다. College의 경우 1, 2년 만에도 졸업을 하고, Co-op을 통해 취업 하는 것이 가능하다(물론 University 역시 Co-op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비용 및 기간이 만만치 않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 자신이 거주하고자 하는 지역의 평 괜찮은 College에 입학 지원을 한다.
- 입학 허가가 떨어지면 이것을 가지고 Study Permit을 신청한다.
- 이 Permit을 가지고 캐나다로 입국한다.
- 학교를 다니며 Co-op 기간 동안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 졸업 후에 그 회사에서 풀 타임 잡을 따낸다!
- 그 동안 영어 점수도 따고, 한국 학력이 있다면 학력 인증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증을 받아둔다.
- 이래 저래 점수를 계산해봤는데 아직 커트 라인을 못 넘길 것 같으면, 1년 정도 회사를 더 다니면 CEC 스트림에 더할 수 있는 점수가 생긴다. 이때 다시 지원해본다.
위 과정이 정확히 내가 밟은 과정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 상, 이것이 가장 안정적이며 정석적인 루트가 아닌가 싶다.